우리나라 꽃
태극무궁화예술선양회

태극 역사
태극 태극 태극 역사

청홍 태극과 우리나라 태극문양의 역사

1. 우리나라 태극문양의 역사

청홍 태극문양은 약 6,000여년 동안 전통을 이어온 우리민족 고유의 문양임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리고 국립해양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수군조련도 병풍에는 조선후기 수군의 훈련모습을 그려놓았는데, 선상에 뚜렷이 청홍 태극문양이 보이고 있다.


국립해양 박물관 소장 수군조련도 병풍. 조선후기 수군의 훈련모습을 그린 8폭 병풍 속의 청홍 태극문양.

즉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이 청홍 태극을 삼태극과 함께 일상 사용하여 왔었던 것이다. 이러한 태극문양이 언제부터 사용되어 왔는지는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문양은 현재까지는 경주 감은사지(感恩寺址) 장대석에 조각된 태극문양(682년)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2009년 전남 나주에서 백제 사비시대(538~660년)인 7세기 초반에 의례용 기물(器物)을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판에 새겨진 태극문양이 발견됨으로써 이것이 가장 오래된 우리나라 태극문양으로 판명되었다.


국내 가장 오래된 태극문양이 그려진 나무판(왼쪽)과 그것을 적외선 사진으로 찍은 모습.

그리고 고려시대에도 태극문양은 많이 사용되었다. 《고려사(高麗史)》에는 충주의 다른 이름으로 예성(蘂城)이 등장하는데 충렬왕대에 국원성을 개축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란 설이 있다. 이곳에서 화려한 연화문이 양각된 중간에 태극문양이 새겨진 심방석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고려 공민왕의 왕비 노국공주의 정릉에도 태극문양이 새겨져 있다.


충주 예성(蘂城) 심방석 태극문양(1277년)과 개성 노국공주 정릉의 태극문양(1365년)

앞서 살펴보았듯이 신라시대 경주 감은사지(感恩寺址) 장대석에 조각된 태극문양은 682년에 새겨진것이고 백제 사비시대(538~660년) 나무판 새겨진 태극문양은 그 이전에 이미 새겨진 것이다. 따라서 중국에서 주돈이(1017년 ~ 1073년)이나 소강절(1011년 ~ 1077년)에 의해 성리학이 정립되고 태극도형이 그려진 시기 이전부터 한반도에는 이미 그와 같은 우주관과 세계관이 있었음을 시사해 준다. 따라서 삼태극에 이어 음양태극문양 역시 중국의 영향이 아니라 고대 한국인의 정신세계가 창조한 철학사상이며 문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2. 아메리카 인디언 문명에서 발견되는 태극문양

멕시코를 여행하던 한 한국인 관광객이 베라크루주에 위치한 아즈텍 유적에서 태극문양을 발견했다.

2017년 설날 특집으로 KBS에서 방영된 ‘멕시코 한류 천년의 흔적을 찾아서’에서 배재대학교 손성태 교수는 ‘멕시코로 이주한 우리민족이 기원전부터 사용해 온 돌거울과 기원후 1세기 무렵 세워진 석상에서 발견된 태극문양’이라고 주장하면서 태극문양의 근원은 중국이 아닌 동이 한민족이라고 하였다.
미국 UCLA대학의 HLA센터 교수팀은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유전자를 검사해본 결과 한국인에게만 있는 HLA, A2, B62, C3와 같은 유전형태가 나오고 있어 한국인과 인디언들이 100% 일치한다는 것을 밝혔다.
그리고 복희 팔괘와 태극문양이 그려진 마야달력이 있어 고대 마야인들이 바로 동이족들이 이주해 갔음이 더욱 확실시 되고 있다.


13달이 표시된 마야달력 속에 복희 팔괘가 그려져 있고, 그 안에 백색과 녹색의 태극문양이 그려져 있다. 육각모양이 태극문양인데 흰색은 양을 나타내고, 녹색은 음을 나타낸다. 이 태극모양은 앞서 신룡의 색깔변화로 살펴본 태극과 일치한다. 그리고 그 속에 또 다른 작은 태극문양이 반대로 그려져 있다. 선천팔괘를 소강절이 다시 회복했다고 하였으나, 멕시코의 마야 인디언들에게서 그것이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1년을 13달로 표시한 달력은 일찍이 자부선인이 만들었다는 〈칠성력(七星曆)〉과 동일한데 그에 대한 설명이 《부도지》 23장에 적혀있다.

1종시終始의 사이를 소력小曆이라하고, 종시의 종시를 중력中曆이라하고, 네 번 겹친 종시를 대력大曆이라한다. 소력의 1회를 사祀(年과 같음)라 하나니, 사에는 13기期(月과 같음)가 있고, 1기期에는 28일이 있으며, 다시 4요曜로 나뉜다. 1요에는 7일이 있고, 요가 끝나는 것을 복服이라 한다. 그러므로 1사祀에 52요복이 있으니 즉 364일이다. 매 사祀의 시작에 대사大祀의 단旦이 있으니, 단과 1은 같기때문에 합하여 365일이 된다.....

즉 1달을 하늘의 28수에 맞추어 4방에 7성星을 배치하는 형식을 달력으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칠성력이라 한다. 그러면 1년에 총 13달이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마야달력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에 자부선인이 칠성력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자부선인은 발귀리의 후손이다. 태어나면서 신명하여 도를 얻어 날아오르사, 일찍이 해와 달을 측정하여 이를 정리하고 다음으로 오행五行의 수리數理를 따져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를 저작하니, 이것이 칠성력七星曆의 시작이다.

그리고 마야달력에 복희팔괘가 그려진 달력의 원형으로 보이는 〈팔괘상중론〉이 《단군세기》나와 있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세 단군 구모소 기미 54년(BC 1382년) 지리숙支離叔이 〈주천력周天曆과 팔괘八卦 상중론相重論〉을 짓다.

주천력周天曆이란 다름아닌 28수가 둘러쳐진 달력으로 칠성력을 말한다. 지리숙은 이 주천력(칠성력)에 팔괘八卦를 서로 합쳐서 하나의 달력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주천력팔괘상중론周天曆八卦相重論〉이다. 바로 앞서 보았던 팔괘 주위로 13달이 그려진 마야달력이 그러한 달력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 중앙에 분명히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다. 복희역을 나타낸 것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이주한 것을 연구한 학자들은 치아 형태와 혈액형, 언어를 연구하여 그 시기를 추정하였다. 그들의 연구에 의하면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들이 아시아 지역에서 이주한 것은 한꺼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3차례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1차는 1만 5천 년 전 베링해협이 연결되어 있을 때였다. 2차는 약 6,000년 전(BC 4000년), 그리고 3차는 약 4,000년 전(BC 2000년) 단군조선 시대 초반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마야달력이 자부선인이 만든 칠성력이라면 그들이 넘어간 시기는 〈팔괘상중론八卦相重論〉이 만들어진 이후인 BC 1382년이 되어 단군조선 중반기에 넘어 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복희 팔괘가 바로 우리와 같은 혈통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간직되고 있었다는 것이며, 이것은 바로 태극기의 원형이 되는 복희 팔괘가 우리민족의 것임을 확고히 해주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