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이란
태극 태극 태극이란
태극 및 태극문양의 유래
1. 태극(太極) 용어의 기원
태극기(太極旗)는 태극(太極)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태극(太極)’이란 말은 언제부터 사용하였던 것일까?
《태백일사》 〈소도경전 본혼 제5〉에 의하면 약 5500년전 태호 복희씨의 동문이었던 발귀리 선인의 《원방각경》에 ‘태극(太極)’이란 단어가 최초로 등장한다.
삼일(三一)은 그 체(體)요, 일삼(一三)은 그 용(用)이라.
원(圓)은 일(一)이 되어 무극(無極)이고
방(方)은 이(二)가 되어 반극(反極)이며
각(角)은 삼(三)이 되어 태극(太極)이라.
여기서 태극(太極)은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에서 인(人)에 해당하는 것으로, 사람은 천지의 기운을 모두 포함하므로 1, 2, 3을 모두 지닌 삼태극(三太極)으로 표현된다. 태극이라는 말 자체가 원래 태일(太一)에서 비롯된 말이다.
《태백일사》〈삼신오제본기〉에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다.
생각건데 저 삼신(三神)을 천일(天一)이라 하고, 지일(地一)이라 하고, 태일(太一)이라 한다.
그러므로 천일(天一)은 원(〇)이고 무극이며, 지일(地一)은 방(Ⱟ)이고 반극이며, 태일(太一)은 각(△)이며 태극(太極)이 되는 것이다. 즉, 태(太)는 사람을 표상하였던 것이다. 사람에게 천지가 모두 포함되어 있으니, 천・지 인 삼극(三極)을 하나로 표상하여 삼태극(三太極)으로 나타내었다. 따라서 태극(太極)이라는 말의 어원이 태일(太一)에서 비롯되었다면, 이 태극(太極) 사상의 원류는 우리 한민족임을 알 수 있다.
2. 태극(太極) 문양의 유래
삼태극 문양의 유래
태극은 원래 삼태극이 근본이고 그 사상은 바로 우리 민족의 고유사상인 삼일사상(三一思想)에 바탕을 두고 생성된 것이다. 이러한 삼일(三一)사상은 고대 환국과 배달국으로부터 내려오는 사상이니 《천부경》에 ‘일석삼극(一析三極, 하나가 쪼개져 세가지 극으로 변한다)’이라 하였고, 『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에서 《삼일신고》를 설명할 때 ‘집일함삼 삼회귀일(執一含三 三會歸一)’이라하여 ‘대저 하나를 잡으면 셋이 함유되고, 셋을 모으면 하나로 돌아온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이 모두 삼태극의 원리를 설명함이다.
그 원리를 보자면 허공속에 존재하는 기(氣)는 모두 파동의 형태로 존제하는데, 파동이 바로 빛이다. 빛의 삼원색이 합쳐지면 백색(白色)으로 돌아오고, 물질의 삼원색이 합쳐지면 흑색(黑色)으로 돌아온다. 이와같이 우주는 삼원기(三元氣)로 이루어져 있고, 그 합체는 하나로 돌아온다. 또 이 하나속에 삼원(三元)이 함유되니 이것이 삼태극의 원리이다. 우리민족이 즐겨 그렸던 삼태극이 빨노파 삼원색으로 이루어짐은 바로 이러한 특성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삼일(三一)사상을 바탕으로한 태극의 원리를 설명한 것은 중국문헌에도 나타나는데 후한(後漢)시대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저술한『한서』「율력지」에는 “태극원기는 셋을 함유하면서 하나가 된다.(太極元氣函三爲一)”라고 하여 삼일사상을 바탕으로한 삼태극의 관념을 보여주고 있다.
태극이 원래 삼태극에서 출발하였고,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삼태극을 즐겨 그려왔다.
건물이나 베겟모, 반짓고리, 부채 등등 일상에서 삼태극 문양을 흔하게 사용하여왔었다.

한옥건물의 석가래 삼태극과 소라반자 삼태극, 그리고 베겟모의 삼태극

한옥 대문의 삼태극과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합장한 홍릉 참전계단 삼태극, 그리고 반짓고리 삼태극 문양.
이러한 삼태극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접할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에서는 주로 흑백으로 그리는 음양태극 문양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태극기도 양극을 표징하는 태극을 사용하지만 중국과는 달리 천지를 뜻하는 청홍태극을 사용하는 것이 다르다. 이 청홍 태극은 중국의 흑백태극과는 다른 개념에서 출발한다.
음양 태극과 청홍 태극의 유래
중국 음양 태극의 유래
음양 태극은 흔히 팔괘도 중앙에 흑색과 백색이 서로 맞물려 회전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일양시생(一陽始生) 일음시생(一陰始生) 즉 양이 시작되어 한계가 차면 음이 시작되고, 음이 시작되어 한계가 차면 양이 시작되어 끝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태극의 원리를 설명한 그림이다. 그렇다면 음양 태극은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 현재까지 일반적인 견해에 의하면 음양 태극은 중국 성리학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본다. 즉 음양 태극은 도교의 영향을 받아 성리학에서 수용한 것이다. 중국 산동성 라오산(崂山) 태청궁 앞 이러한 음양 태극문양을 볼 수 있다.

중국 라오산(崂山) 태청궁 앞 복희 팔괘도와 음양 태극, 그리고 주돈이가 제창한 태극도설
이러한 팔괘도의 시초는 북송시대 도사 진단(陳摶?~989)의 영향을 받은 강절 소옹(邵雍, 1011~1077)이 실질적인 팔괘도 제창자로 알려져 있었다. 소옹은 《주역》의 설괘전을 바탕으로 건남곤북(乾南坤北) 이동감서(離東坎西)의 선천도(先天圖) 혹은 복희 팔괘도를 복원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소강절과 거의 동시대에 염계 주돈이(周敦頤, 1017~1073)에 의해 태극도설(太極圖說)이 제창되었다. 흔히 ‘무극이태극(無極而太極)’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 주돈이의 태극도설에서 ‘태극(太極)’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대로 ‘태극(太極)’이라는 말은 발귀리 선인에 의해 최초로 사용되었으며, 개념도 음양의 개념이 아닌 삼태극의 개념이었다. 그러나 음양태극원리는 태극도설에 기반하여 생성된 것이므로 그 생성 연대는 북송시대로 볼수 있겠다. 여하튼 소강절의 팔괘도와 주돈이의 태극도설이 이후 주자(1130~1200)에게 전해지면서 세상에 널리 유포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태극기도 중국 성리학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 태극기의 청홍태극은 태극도설에서 유래된 태극이 아니라 고대 복희가 신룡의 변화를 보고 창안했다는 복희역의 태극원리에서 그려진 것이다.
우리나라 청홍 태극의 유래
《태백일사》〈신시본기〉에 의하면 복희씨는 배달국 5번째 태우의 환웅의 12아들중 막내아들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복희에 의해 팔괘가 고안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환웅천왕으로부터 다섯번 전하여 태우의太虞儀 환웅이 계셨으니 …… 아들 열둘을 두었다. 맏이를 다의발多儀發 환웅이라 하고, 막내를 태호太皥라 하니 또는 복희씨伏羲氏라고 한다. 어느 날 삼신이 몸에 내리는 꿈을 꾸어 만가지 이치를 통철하고 곧 삼신산으로 가서 제천祭天하고 괘도卦圖를 천하天河에서 얻으니, 그 휙은 세번 끊기고 세번 이어져 자리를 바꾸면 이치를 나타내는 묘妙가 있고, 삼극三極을 포함하여 변화무궁하였다.
〈대변경〉에서 말한다.
복희는 신시로부터 나와 우사雨師가 되었다. 신룡神龍의 변화를 보고 괘도를 그리고 신시의 계해을 바꾸어 갑자를 처음으로 하였다.
이상에서 밝힌 바와 같이 복희가 팔괘를 그리게 된 것은 바로 천하에서 나온 신룡神龍의 변화를 보고 그렸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에는 복희 역(易)을 짓게 되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바로 청홍태극이 생성된다. 이 청홍태극의 변화 단계를 기호로 나타낸 것이 바로 팔괘가 된다.
환역桓易은 우사의 관리로부터 나왔다. 때에 복희伏羲는 우사가 되어 여섯 가축을 기르게 하였으며, 또 신룡神龍이 해를 쫒아가는 것을 살펴 하루에 열두번 색을 바꾸는 것을 보고 이에 환역桓易을 만들었다. 환桓은 곧 희羲와 같은 뜻이고 역易은 옛날 용龍자의 본 글자다.
신룡神龍이란 일종의 파충류라고 볼 수 있다. 파충류는 변온동물로써 스스로 온도를 조절할 수 없다. 따라서 빛을 찾아 쪼이므로써 체온을 유지하는데 해가 뜨면 밝은색인 청색계통으로 변하고, 해가 지면 어두운색인 붉은 색 계통으로 변한다.

햇볕을 쪼이는 시나이 아가마도마뱀. 빛을 쪼이면 푸른색으로 변한다.
파충류 중 가장 변색을 잘하는 동물은 카멜레온이다.
이러한 변온동물 파충류의 특징을 해시계 그림자 길이 변화에 맞추어 색변화를 나타내면 청홍 태극문양을 그릴 수 있다.

파충류의 특징에 맞추어 붉은색을 그림자 길이 변화로 나타내고, 청색을 햇볕의 변화로 나타낸 것이다. 즉 아침 6시 일출 시에 그림자 길이는 가장 길다. 푯대는 중앙에 꽂아서 그림자 길이 변화를 측정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자는 중앙을 기점으로 점점 짧아지고, 햇볕은 점점 커진다. 정오가 되면 그림자는 없어지고 햇볕이 가장 많다. 그리고 오후부터는 푯대를 바깥에 꽂아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을 표시한다. 정오부터 점점 그림자가 외부에서 안으로 길어진다. 붉은색이 그림자 태극문양을 나타낸 것이다. 반대로 청색은 햇볕의 크기 변화를 나타낸 태극문양이다.
그리고 팔괘는 양기와 음기의 강도 변화를 순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정오로부터 아침으로 오면 점차 햇볕은 약해지므로 팔괘는 양기가 강한 것에서 적은 것으로 변한다. 즉 1건천(一乾天), 2태택(二兌澤), 3이화(三離火), 4진뢰(四震雷)로 양기가 줄어든다. 다시 붉은색 그림자는 5손풍(五巽風), 6감수(六坎水), 7간산(七艮山), 8곤지(八坤地)로 음기가 강해진다.
이처럼 복희가 신룡神龍의 색깔 변화를 보고 8가지 기호로 나타낸 것이 복희 팔괘도가 된다. 복희가 천하(황하)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그림을 취하여 팔괘를 지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신룡神龍의 색깔 변화와 음양 강도를 단계적으로 변화시키는 원리를 팔괘의 기호로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상서(尙書)》 공안국(孔安國)의 전(傳)에서도 "복희가 왕이 되어 천하를 다스릴 때 황하에서 용마가 나왔는데 그 무늬를 본받아서 팔괘를 그렸다. 이것이 하도이다(伏羲王天下 龍馬出河 遂則其文 以畵八卦 謂之河圖)"라고 하였다.
즉 팔괘의 근원이 용마의 무늬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는 복희에 대한 구체적 역사기록이 없어 단지 전설상의 인물로만 취급하고 있어 복희가 역(易)을 지었다는 근거나 원리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복희역에서 나타나는 태극은 청홍 태극이어야 마땅하지만 모두 흑백으로 표현되는 음양태극으로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복희역의 태극은 분명 청홍으로 표현되는 태극이다. 이러한 내용이 중국의 가장 오래된 수학책인 《주비산경》의 기록에 나타난다. 《주비산경》〈상권 1장〉 옛날에 주공(周公)이 상고(商高)에게 물었다.
“은밀히 듣자하니 대부께서 수(數)에 밝으시다고 하던데, 옛적에 복희씨가 어떻게 하늘의 움직임의 도수를 정했는지요? 하늘이란 되(升)로 재어볼 수도 없고 땅이란 자로 재어볼 수도 없는 데, 어찌 숫자로 환산했단 말인지요” 상고가 대답했다.
“수(數)의 법칙이란 원(〇)과 네모(Ⱟ)에서 나왔지요. 네모는 땅에 속하며, 동그라미는 하늘에 속하니,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서리가 집니다. … 하늘은 푸르고 흑색이며, 땅은 누렇고 붉습니다. 하늘을 숫자로 본뜬 것을 갓이라 하고, 푸르고 검은 것을 겉으로, 누르고 붉은 것을 안으로 하여 하늘과 땅의 위치를 묘사합니다.”
여기서 하늘은 푸르고, 땅을 붉은 것이라고 하고 있다. 이것은 신룡, 즉 파충류의 피부색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는 태고적부터 이 청홍 태극문양을 사용하여 왔었다. 반면 중국에서는 흑백(黑白) 태극문양이나 흑홍(黑紅) 태극문양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는 구분된다.
때문에 태극기는 우리민족 고유의 청홍태극문양에서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논개 사당 대문의 청홍 태극문양과 안산 향교 홍살문에 설치된 청홍 태극문양
